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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그릇

자기애(自己愛)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왜?' 라고 끝없이 묻는다면 그 대답도 역시 끝없이 진행될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한참 돌고돌아 결국 원래의 물음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밥은 왜 먹나요?" 하면 "먹고싶어서", "왜 먹고싶은가요?" "배고프니까" "배가 고프다면 왜 꼭 먹어야 될까요?" "배고픈 상태는 불편하니까" 등등... 그래서 애들이 "왜? 왜?" 하고 계속 물으면 웬만한 어른들은 적당한 선에서 그냥 잘라버립니다.  "그냥 그런거야 하고."  이 얼마나 간단 명료한 대답입니까!  "원래 그런거" 라니.  그러나 그렇게 대답해주는 많은 부모들은 아마도 마음 한켠에 귀찮은 설명을 생략해버린데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그리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도) 저마다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게 마련입니다.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도 않지만, 있어도 매우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무 뜻도 없는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말로는 "이따위 인생 살아서 뭐해" 라고 말하는 사람들 천지지만 그 사람들한테 가서 전혀 안아프게 죽도록 해 줄테니 가서 자살해라 한다면 좋다고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옳다구나 하고 가르쳐달라는 사람은 진짜로 의미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겠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딱히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 인생의 의미는 각각 다를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하는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낄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들 키우는 재미일수도 있고, 가지각색이지요.  어떤 사람은 미소녀 피규어 모으는 것이 인생의 재미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 낭비하는 쓰레기같은 놈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는 심각한 미션이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피규어에 관심이 있는건 아닙니다.  돈드는 취미는 싫어하거든요.

 

Harry Frankfurt라는 철학자는 이 두가지 개념을 '자기애' (Self-Love) 의 관점으로 한데 엮습니다.  즉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으며, 이 목적에 부합하는 행위를 함으로 인해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목적이란 바로 "자기애" (Self-Love) 입니다.  모든 사람은 결국에는 자기에 대한 애정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부정하고, 어떠한 우주적인 법칙이나 도덕론을 내세우며 '이것이 내가 사는 목적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위선입니다.    결혼도 결국에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자기 인생을 손해볼걸 뻔히 알면서  결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손해보는데에서 쾌감을 찾는 매저키스트일 뿐이므로 이 역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어머니가 (기이하게도 여기서 아버지의 예를 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식을 키우며 돌보는 것도 자기만족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요?  어머니가 자신의 고생을 무릅쓰고 자식들을 돌보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구요?  물론 그런 경우는 많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들은 과연 왜 그러시는 걸까요?  애들 버리는 어머니들도 많은 걸 보면 어머니라고 다 그런것도 아닌것 같은데 말이죠.  자식을 (대개는 자신의 자식이죠) 키울때 드는 성취감과 만족감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틀린 말일까요?  이야기가 약간 빗나가는데, 지 자식 이뻐서 잘기르겠다는 것은 뭐 그렇게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일을 무슨 칭찬을 합니까.  반면에, (이런 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주 꼴보기 싫은 자식을 꾹 참고 해줄거 다 해주고 가르칠거 다 가르치는, 하지만 마음 속에는 자식에 대한 증오가 불타오르는 어머니라면 저는 주저없이 그분을  세상에서 제일 도덕적인 분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의무감 때문에 그러한 고생을 한다는건 성인군자라도 힘든 일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제가 칸트의 의무론을 옹호하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칸트의 주장은 그렇게 별난 것도 아닙니다.  지가 좋아서, 혹은 자기 이득을 위해서 하는 행위보다, 의무감에 이끌려 하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한테 득될 것도 아닌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억지로 부모 손에 이끌려 학원 가는 초등생을 도덕적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초등생들은 의무감 때문게 가는게 아니라 안갈 때 감수할 불이익이 두려워서, 즉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가는 거거든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인륜, 천륜, 진정한 사랑, 이런 것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실체도 없는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Frankfurt 교수.  웬지 철학교수 분위기는 안납니다)

 

Frankfurt는 그럼 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사람은 본래부터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졌고, 거기다 왜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그는 자신이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라는 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냥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애야 말로 모든 동기에 대한 종착역이며, 여기서부터 우리가 세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가 안되는 일들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등산은 왜 합니까?  죽을지도 모르는데 암벽은 왜 타며, 어차피 올라가봤자 도로 내려와야 되는데 뭐하러 기를 쓰고 오르려 합니까?  아이를 낳는 것도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참 바보같은 짓입니다.  애를 성인이 될때까지 키우는데 2억인가 든다고 한참 전에 어딘가에서 읽었습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들겠지요 아마.  그렇게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잘해 봤자 애들 커서 시집 장가가면 끝인데 뭐하러 애들한테 그렇게 투자를 할까요?  은행가서 아무 펀드나 들어도 수익률이 더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거창한 이유를 들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겠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행동들이 자신에게 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치판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느낌입니다.  장가도 안가고 미소녀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을 다른 이들은 어리석다고 비웃겠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그러한 행동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다면 그의 취미는 등산, 독서, 여행, 심지어는 자원봉사에 비견해 보아도 전혀 모자랄 것이 없습니다.  그가 그의 무지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더 큰 행복을 놓친다면 그를 어리석다고 할수 있겠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타인의 몫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할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면, 그 역시 자기애의 개념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자기애의 방식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를 일률적으로 구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불로장생을 원하는건 아닙니다.어떤 이는 자기애의 발로로 죽음을 택할수도 있고, 성경 말씀을 외우며 불구덩이로 걸어들어갈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보다 더한 고통은 오지 않을거라는 안도감에 쾌락을 느낍니다.  남이 보기에 아주 해로운 행위라도 꼭 자기애에 배치되는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Frankfurt의 이론을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2004년에 발간된 The Reasons of Love (Harry Frankfurt) 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현재 프린스턴대 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On Bullshit" 이라는 베스트셀러 소책자로 일반인에게도 비교적 알려진 사람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g5njpark/40056870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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